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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말레이시아 여행 에세이 1

9월 20일 영어 학원을 마치고 진희와 점심을 먹기 위해 종각역 주변에 있는 떡볶이 집으로 향했다.
마지막 더위를 보내려고 하는 듯 비가 무지하게 쏟아지고 바람마저 거세게 불어 바지 밑단이 촉촉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비가 별로 오지 않을 것 같아 장화를 신지 않았는데 그건 나의 실수와 오만이었다. 비 왜 이렇게 많이 와!
점심 식사를 하러 밖에 나온 직장인들과 한국 문화 체험인지 무슨 세미나인지 외국인들도 쏟아지는 거리 사이를 닌자처럼 휙휙 지나 미리 떡볶이 집에 가있을 심산이었다. 
젠장 근데 왜 오늘 휴업이지? 가게 사정으로 문을 닫는다는 글자를 보고 '아, 또 어디 갈지 찾아야 되네'와 '그냥 학원에서 화장실 들렀다 나올걸..' 불만과 귀찮음 그리고 지금 당장 급한 생리 현상이 많은 의지를 꺾고 있었다.
 
때마침 진희가 역에 내렸다는 전화를 받았다. 진희는 만삭의 임산부, 그녀를 비가 오는 이 길바닥의 불편함을 오래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급하게 다른 곳을 찾고 평점도 보고 이 식당이 오늘 날씨와 어울릴지 생각을 한 후 몇 가지 제안했다.
떠껀하고 얼컨한 메뉴를 정하고 15분 정도 걸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중간에 화장실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었지만 마땅히 들어갈만한 곳은 없었다. 그냥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았다.
 
몇 번의 세찬 바람에 춥다며 큰 소리도 내고 오늘 날씨 왜 이런지, 비는 왜 이렇게 많이 오는지 여러 불만이 섞여 그냥 오늘 바로 집에 가는 게 더 나았을지도 ,,, ㅋㅋ라는 생각도 했다.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주문을 했고, 바로 화장실로 튀어갔다.
한결 밝아지고 편안한 표정으로 가게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생각보다 젊은 인테리어는 아니었다. 예전엔 큰 명성을 누렸으나, 지금은 한풀 꺾인 어두컴컴한 내부였다. 도대체 이 많은 평가와 높은 별점은 언제 획득한 걸까..? 조금 속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유튜브를 시작하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가는 곳에 늘 카메라가 함께였다. 
식탁 한편에 거치하며 음식도 찍고 진희와 이야기를 하고 여행 준비를 위해 다이소에서 산 물건들을 보여주는 모습도 함께 담았다.
 
사실 이렇게 진희가 궂은 날씨도 마다하지 않고 귀찮은 발걸음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밥을 먹고 간 카페에서 진희가 꺼낸 건 봉투 두 개였다. 하나엔 말레이시아 돈 500링깃이 담겨 있었고, 다른 하나엔 잘 다녀오라는 응원이 담긴 카드였다. 흑.. 늘 서프라이즈를 해주기만 했었지 이렇게 깜짝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나로선 (정말 예상 못함) 너무가 고맙고 감동이었다. I'm deeply touched.
함께 서프라이즈를 준비한 현정이가 갑자기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그녀와 작별 인사는 통화로밖에 할 수 없었지만 고마운 마음이었다.
그래서 진희가 자꾸 카메라 켰냐고 물어봤구나? ㅋㅋㅋㅋ 내가 양껏 놀라워하는 영상은 '헐' 퍼레이드와 함께 고스란히 유튜브에 올렸다. 
 
식사와 커피 토크토크를 마치고 다섯 시쯤 집에 가기로 했다. 21일 이른 아침 비행기였기 때문에 20일 밤에 공항으로 향할 계획이 있었기에 조금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아직 짐도 덜 쌌고, 집 청소도 좀 덜 했고, 한 달간 집을 비우기 전에 많은 정리가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지환이가 잘 다녀오라는 전화까지 할 정도면 이번 내 여행이 우리 가족 뉴스 핫토픽은 맞나 보다.
 
처음에 기내용 슈트케이스에 짐을 싸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은 도대체 어느 머리에서 나온 거지? (내 머리)
예전에 미국 여행 일주일을 계획할 때도 슈트케이스 두 개를 챙겨갔던 난데, 한 달 살기라면서 무슨 기내용 하나? ㅋㅋㅋ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몇 인치인지 모르는 화물용 슈트케이스를 꽉 채운 것도 모자라 배낭을 메고 양 어깨에 가방을 이고 출국과 입국을 했다. 20킬로 무료수하물이었는데 출국할 땐 22킬로가 넘었고, 입국할 때도 비슷한 무게로 들어왔다. 마지막까지 오리발을 챙겨야 하나 우쿠렐레를 챙겨야 하나 고민 한걸 보면 나는 정말 한 달 살기에 많은 기대를 품었던 것 같다. 
 
나는 솔로 멸망의 돌싱특집 2탄 마지막 선택을 앞두고 티브이에 정신 팔려서 제대로 짐을 못 쌀까 봐 티브이도 틀지 않았는데, 친구들은 카톡방에 연신 누가 어쩠다, 왜 그랬지?, 하지말지,,라는 평들이 쏟아졌다. (원래 우린 나솔 보며 동시에 감상까지 바로 공유하는 방구석 1열 이동진이었다.)
  
12시 40분에 인천공항에 떨어지는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가려고 했으나 준비를 하다 보니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무조건 타야 하는 막차의 부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자꾸 늘어나는 짐이 부담이 되었는지 사실은 둘 다 때문이겠지만,  예상보다 20분 일찍 나갔다. 물론 처음에 예상한 시간도 많이 여유를 두고 정한 거지만 그 여유에 여유를 더해 짐을 짊어지고 나왔다. 
야심한 시각, 덜컹덜컹 매끈하지 않은 길 위로 22킬로의 슈트케이스가 지나간다. 슈트케이스의 바퀴가 불안하게 굴러가고, 양 어깨 또한 너무 무겁고 짐의 부피가 상당해서 '저 정도 짐이면 택시를 타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
(택시를 타기엔 비용의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는 점..)
 
 
정말 오랜만에 출국을 위한 공항행이었다. 하늘길이 열렸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늦은 시각에도 많은 사람들이 공항에 가득했고, 이미 좋은 자리를 선점하여 의자에 누워 잠을 자는 사람들도 많았다.
 
21일 07시 쿠알라룸푸르행 비행이었지만 공항에 도착한 건 21일 00시 몇 분,, 항공권을 예약한 웹 페이지에서 체크인을 하려고 했으나 자꾸 무슨 문제 때문인지 오류가 발생하고, 챗으로 문의까지 해서 예약번호를 다시 확인했으나 여전히 온라인 체크인은 오류 발생으로 순탄치 않았다. 그냥 공항에 체크인 카운터가 열리면 해야겠다. 그전까지 유튜브 편집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짐으로 결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부지런히 편집을 시작했다.
배가 고플까 봐 챙겨간 감자와 구운 달걀 (ㅋㅋㅋ)을 먹어야 되는데 ,, 좀처럼 입맛이 돌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편집을 마치고 체크인 카운터를 통해 짐을 부치고 부랴 부랴 에어사이드로 들어갔다. 
 
바틱에어라인은 기내식을 따로 신청해야 하지만, 좌석 간 공간이 넓고 일단 내가 항공권을 예매할 땐 좀 저렴한 편이었다. 지금은? 글쎄? 
약 7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공복으로 있을 수 있을까? 난 이미 눈을 뜬 채로 몇 시간 컴퓨터 작업을 했는걸? 이라며 원래 공항 스벅에서 잘 마시던 돌체라테를 자그마치 그란데 사이즈로 시키고 게이트 근처로 갔다. 
편집을 완성하고 커피와 달걀과 감자를 먹으며 업로드를 완료할 계획이었다.
 
6시 30분쯤 업로드를 마치고, 게이트로 향했다. 맨 끝이구나? 아마.. 몇 년 전 그 시절 남친과 일본 갈 때도 그쪽에서 탄 것 같은데 ㅎㅎ.. (ㅅㅂ) 
한 번 갔던 곳을 잘 외우는 편이고,, 그때의 기억이 머릿속에 한 장면으로 각인될 때가 많다.
 
 이렇게 나의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가 시작되었다. 사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착륙까지가 가장 설렘이 컸다. 그 이유는..? 다음 일기에서 전하도록 하지...ㅎㅎ
 
 
 
한 달이 훨씬 지난 일을 기억해서 일기로 써보고 싶단 생각은, 어느 일본 작가의 소설을 읽고 난 이후이다. 그 이후 어떤 책을 읽을까 하다 여행 에세이라는 장르를 보고 나서 나도 그때 썼으면 더 현장감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직접 느낀 일을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게 큰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나도 한 번 이런 거 써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렇게 또 즉흥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물론 많이 생략되어 있고,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과감하게 스킵했다. 이 일기가 얼마나 꾸준히 이어 질지는 모르지만 일단 또 하나를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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